[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본 서적은 루소가 디종 아카데미에서 제시한 질문에 대해 제출한 논문임>
옮긴이 서문.
근대 사회과학의 시작,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악의 근원은 불평등이다. 왜냐하면 불평등에서 부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가난과 부라는 말은 상관적이어서 평등한 곳에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을 것이다.
- 문명인은 자기 개인의 신체적인 안전이나 기초적인 필요의 충족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잉여를 탐하게 되며 남이 원하는 것을 탐한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힘이나 아름다움을 과시함으로써 타인을 매료시키려 한다. 그는 이제 타인의 견해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됨으로써 타인의 판단에서만 자기 존재에 대한 감정을 얻게 되며,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자신이 정의되기를 원한다.
- 서로의 차이에 대한 비교 의식과 자신의 우월성을 대중적으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소유욕과 결합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 그리하여 인류 사회는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이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변해 버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당연히 가진 자, 즉 힘센 자가 지배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된다. 갈수록 힘센 자의 지배는 강화되고 가난한 자, 즉 약한 자의 의무는 커진다.
- 인간의 본성은 천성적으로 선하다. 인간을 이렇게 타락시킨 장본인은 인간이 획득한 지식이다. 인간사회는 그들의 이해관계가 증대함에 따라 서로를 증오하게 된다.
- 루소는 자연 상태의 미개인이 지녔던 천성적인 선함과 자유, 그리고 천복을 되찾아 주기 위한 교육과 '자신의 힘과 자유를 타인의 유용을 위해 완전히 양도해야 한다'라는 사회계약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고 있다.
헌사.
제네바 공화국에 바침
- 만일 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나머지 모두는 필연적으로 그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 명의 국외 통치자가 있을 경우 그들이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든 백성들은 그들 누구에게도 제대로 복종하지 않을 것이기에 국가를 잘 다스리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 새로운 법안을 제출하는 권한은 행정관들만 가져야 하는데 그들조차도 아주 신중하게 그 권한을 사용해야 하며, 국민들 또한 그 법에 대한 동의에 아주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법이 매일 바뀌는 것을 보면 국민은 곧 그 법을 무시하며, 개선이라는 이름을 빌려 옛 관행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지면 극히 작은 악을 바로잡으려다 되레 더 큰 악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 개인들은 법을 비준하고 통치자들의 보고에 기초하여 아주 중요한 국사를 그들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것에 그치고, 존경받는 법정을 세운 뒤 주의를 기울여 여러 관할로 나누고, 재판을 하고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동료 시민들 가운데 가장 능력이 있고 공정한 사람들을 매년 선출하며, 행정관들의 덕망이 그처럼 국민의 지혜로움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국민과 행정관들이 서로 존경하는 그런 공화국을 원합니다.
서문.
- 세월과 사태의 연속이 인류의 본원적 구조에 야기했음에 틀림없는 온갖 변화를 거치면서 자연이 만들어놓은 상태 그대로의 자신을 알지 못하게 된다.
- 인류의 모든 진보가 그 영혼을 끊임없이 그것의 원시 상태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 자연권의 진정한 정의에 대해 그토록 많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인간 본성에 관한 그 무지 때문이다. 자연법의 관념은 명백하게 인간의 본성에 관련된 관념이다.
- 우리가 자연인을 알지 못하는 한 자연인이 받아들였던 법이나 자연인의 구조에 가장 적합한 법을 규명하려 해보았자 쓸데없는 일이다. 그것이 법이기 위해서는 그 법의 강요를 받는 사람의 의지가 그 법을 의식하여 복종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자연적이기 위해서는 그 법이 자연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 이성 이전의 두 원리. 자기애는 우리 자신의 안위와 자기 보존에 열렬히 관심을 갖게 하며, 동정심은 인간이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기 싫어하게 하는 자연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디종 아카데미에서 제시한 질문.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관한 논문.
- 두 종류의 불평등
1) 자연적 혹은 신체적 불평등
2) 도덕적 혹은 정치적 불평등 : 동의에 의해서 결정 및 용납됨.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로 이루어져 있음.
- 두 불평등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물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명령하는 사람이 복종하는 사람보다 반드시 더 뛰어난 것인지, 신체 혹은 정신의 힘, 지혜 혹은 덕목이 동일한 사람들에게 항상 세력이나 부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것인지를 표현만 달리하여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 시대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자연상태가 존재했는지 의심해 보는 일조차도 하지 않았다.
- 이 사태의 본질을 밝히는 데에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으로 간주해야 한다.
1부.
- 미개인의 신체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신체를 다양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신체가 습득하게 되는 힘과 민첩성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바로 우리의 솜씨 좋은 재주다.
- 자신이 예측해야 하는 육체적인 이득과 해악을 구분할 수도 없고 자신이 맞서야 하는 위험과 자신의 힘을 비교할 수도 없을 때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미지의 광경에 인간은 두려워한다.
- 인간의 또다른 적은 타고난 나약함 : 유년기와 노쇠와 온갖 종류의 질병
- 말, 고양이, 황소, 당나귀까지 대부분이 우리의 집에서 있을 때보다 숲 속에 있을 때 더 크고 강건한 체질을 가지며 힘과 활기와 용기가 더 있다. 사회화되고 예속화된 인간은 나약해지고 겁이 많아지며 비굴해진다.
- 내게 모든 동물은 자연으로부터 스스로 활력을 되찾고, 자신을 파괴하거나 고장 내려는 경향이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을 보호하도록 감각을 부여받은 정교한 기계 같기만 하다. 나는 인간의 몸도 꼭 같게만 보인다.
-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어리석은 자질은 스스로를 개선하는 능력이다. 아무것도 습득한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어 항상 본능만 가지고 있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노쇠나 여러 사고들로 인해 그의 개선 가능성이 그에게 습득하게 만든 모든 것을 잃어버려, 심지어는 동물보다도 더 저급한 상태로 다시 떨어지기 때문이다.
-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정념에 많이 빚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처럼 정념 역시 지적 능력에 많이 빚지고 있다. 우리의 이성이 개선되는 것은 바로 그 지적 능력과 정념의 활동에 의해서다.
- 미개인은 모든 종류의 지식이 결여되어 있기에 오로지 마지막 종류의 정념들 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그의 욕망은 자신의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넘어서지 않는다. 미개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행은 죽임이 아닌 고통이다. 죽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동물의 상태를 벗어나면서 가장 먼저 습득한 것들 중 하나다.
- 미개인의 상상력은, 더 넓은 지식을 원하려면 먼저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한 법인데 지식이 너무 없기 때문에 예측력도 호기심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시야만큼이나 한정된 그의 계획들은 기껏해야 하루치의 계획에 머물 것이다.
- 어떻게 인간이 의사소통의 도움이나 필요의 자극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토록 큰 간격을 뛰어넘을 수 있었는지를 납득하기란 불가능하다.
- 그 모든 형이상학을 전하지 못함으로써 그것을 생각해 낸 개인과 함께 사라져버릴 경우, 그 형이상학이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서로를 깨우칠 수 있겠는가?
- 말의 사용에 얼마나 많은 관념을 빚지고 있는가?
- 언어가 어떻게 필요하게 되었는지 상상해보라. 언어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의 교제에서 생겨났다고 말하고 싶다.아이가 어머니에게 할 말이 더 많기에 언어 발명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이쪽이었다.
- 언어가 어떻게 확립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말하는 기술을 발견하기 위해 생각하는 법을 알 필요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관념들에 대한 관례적인 통역자가 누구일 수 있었을까?
- 언어가 어떻게 확립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말하는 기술을 발견하기 위해 생각하는 법을 알 필요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관념들에 대한 관례적인 통역자가 누구일 수 있었을까?
- 모인 인간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기 전에 필요로 했던 유일한 언어는 자연의 외침이다. 이 외침은 급박한 때 일종의 본능에 의해서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고통을 덜어주기를 부탁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관념의 범위가 확대되고 그 수량이 많아지기 시작하여 그들 사이에 더 긴밀한 의사소통이 정착되면 인간은 더 많은 기호와 더 확대된 언어를 찾는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대상을 몸짓으로 표현했으며, 귀에 들리는 대상은 소리시늉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몸짓은 앞에 보이거나 묘사하기에 쉬운 대상과 보이는 행동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인간은 마침내 몸짓을 목소리의 분절로 대체할 생각을 했다. 그 대체는 공동의 동의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
- 최초의 단어들은 이미 형성된 언어들 속에서 사용되는 단어들보다 훨씬 더 확장된 의미를 지녔다. 각 단어에 절 전체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 사물은 처음에는 종과 속에 관계없이 어떤 특정한 이름을 부여받았다. 어떤 한 떡갈나무를 A라는 이름으로, 다른 떡갈나무는 B라고 불렀다. 따라서 지식이 한정되면 될수록 어휘 수는 더 많아졌다. 불편은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존재들을 총칭적인 공통의 명칭 아래 배열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들의 속성과 상이점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찰과 정의가, 훨씬 더 많은 박물학과 형이상학이 필요했다.
- 일반적인 관념은 단어의 도움에 의해서만 정신 속에 들어올 수 있으며, 동물들이 그와 같은 관념을 형성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일반적인 관념은 어떤 것이든 순전히 지적이다. 나무 일반의 그림을 마음속에 그려보라. 언술에 의해서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 관념을 확대하고 단어들을 일반화하기 시작했을 때, 아주 좁은 범위로 국한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존재들의 모든 상이점들을 구분하지 못했기에 너무도 적은 수의 종과 속을 만들었다. 더 세밀히 분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했다. 모든 관찰에서 벗어나 있던 새로운 종들의 존재들이 그 증거이다.
- 자연은 인간들이 말의 사용을 쉽게 하기 위해 들인 배려가 적었다. 인간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행한 모든 일에 자연이 얼마나 기여하지 않았는지를 보게 된다.
- 문명화된 삶과 자연적인 삶 가운데 어느 쪽이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더 견딜 수 없게 되기 쉬운지 묻는다. 자유로운 미개인이 삶을 불평하며 자살할 생각을 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 지식에 의해 오히려 눈이 멀고 정열에 의해 고통스러워하며 자신과 다른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는 미개인이 있었다면, 그 미개인보다 더 비참한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미개인은 자연 상태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본능 속에 다 가지고 있었으며, 사회생활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계발된 이성 속에 다 가지고 있었다.
- 처음에는 그 상태의 인간은 그들 사이에 어떠한 종류의 도덕적 관계나 주지의 의무도 갖지 않아서 선하거나 악할 수도 없었으며 악덕이나 미덕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물리적인 의미. 문명인들 사이에 악덕보다 미덕이 더 많은지, 그들의 미덕은 악덕이 더 많은지, 그들의 미덕은 악덕이 해로운 것 이상으로 더 유익한지, 누구에 대해서도 두려워해야 할 악도 기대해야 할 선도 없는 것이 더 행복한 상태가 아닌지 검토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홉스처럼 인간은 선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악하게 태어났으며, 미덕을 모르기 때문에 악덕에 젖어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말자. 인간은 의존적일 때 약하다. 그러니 자유로워야 건장해진다.
- 미개인들은 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악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예 악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보존 욕구를 완화하기 위해 인간에 주어진 원리로, 자신의 동료 인간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는 것에 대한 선천적인 혐오감에서 자신의 안녕에 대한 열망을 완화시킨다.
- 이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정심을 주지 않았다면 그들의 모든 도덕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괴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인 미덕이 그 독특한 자질에서 비롯된다. 더 긴밀하게 일체감을 가지면 가질수록 동정심은 더 강해질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한없이 더 긴밀했음이 틀림없다.
- 이기심을 낳는 것은 이성이다. 어떤 핑계를 대며 자기 내부에서 분노하는 자연으로 하여금 살해당하는 사람과 자기를 일체화시키지 못하게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 동정심은 각 개인에게 자기애의 활동을 완화시킴으로써 인류 전체의 상호적인 자기 보존에 기여하는 천성적인 감정인 것이 확실하다.
- 정념이 난폭해지면 질수록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법이 더 필요하다. 무질서가 법 자체와 함께 태어난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본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 사랑의 감정 속에 있는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사랑의 정신적인 면은 인위적인 것으로 사회 관습에서 생겨난 것이다.
- 사랑의 대상의 선택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행복한 사람들은 관능적 욕구를 덜 빈번하게 느끼며 그 강도 또한 덜함에 틀림없는데, 결과적으로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 더 드물고 잔인함이 덜함에 틀림없다. 즐겁게 그 충동에 몸을 맡긴다. 그리하여 욕구가 충족되면 모든 욕망은 꺼져버린다.
- 사랑 또한 인간에게 너무도 자주 불행을 초래하게 만드는 그 격렬한 열정을 사회 속에서 습득한 것이다.
- 동물들 중 여러 종에서는 발정기에 종 전체가 한꺼번에 흥분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공동의 격정과 소란과 무질서와 싸움이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은 사랑이 전혀 주기적이지 않은 인류에게는 오지 않는다.
- 일도 언어도 집도 전쟁도 서로 간의 교류도 없이 숲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미개인은 다른 동료 인간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해칠 욕구도 없었을 것이며, 그들 중 누구도 개인적으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자연적인 불평등조차도 우리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만큼의 현실성과 설득력을 갖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건장한 체질이나 허약한 체질의 결과인 튼튼함과 약함은 흔히 신체의 근원적 체질에서 온다기보다는 기를 때 강하게 기르느냐 아니면 유약하게 기르느냐 하는 차이에서 온다. 거인과 난쟁이가 같은 길을 걸어갈 때 그들이 걷는 발걸음 수만큼 거인에게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에게서는 자연적인 불평등이 제도의 불평등에 의해 한층 더 커지게 되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 어떠한 상호 관계도 허락하지 않는 상태라면, 타인들을 해쳐 가며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상황에 두지 않는 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 자연 상태에서 불평등은 거의 감지되지 않으며 불평등의 영향도 거의 없다.
2부
- 한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것이야"라고 말할 생각을 해내고,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만큼 순진하다고 생각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사회의 실제 창시자다.
- "과일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땅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님을 망각하면 당신들은 파멸이오."
- 이전의 많은 관념들에 의존하는 그 소유 관념은 인간의 정신에 어느날 갑자기 형성되지 않았다.
- 인간의 최초 감정은 자기 생존에 대한 감정이었으며, 최초 관심은 자기 보존에 대한 관심이었다.
- 그들은 자연 장애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으며, 필요할 때 다른 동물을 쓰러뜨리는 법도 배웠다.
- 인류가 더 멀리까지 이르고 인간이 늘어남에 따라, 토양이나 기후, 계절의 차이는 미개인들의 삶의 방식도 차이를 가져오게 했다. 낚시 도구. 활과 화살. 동물의 가죽. 불.
- 인간의 정신 속에는 자연스럽게 어떤 상관관계에 대한 관념이 생겨났음에 틀림없다. 자신의 안전에 가장 필요한 예방책을 가르쳐주는 반사적인 조심성을 낳았다.
- 새로운 지식들은 인간에게 다른 동물들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증대시킴과 동시에 그 우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 인간은 동류의 인간에 대한 관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동류의 인간들 모두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그 같은 상황에서는 자기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기에 인간은 그들이 사고하고 느끼는 방식과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자신의 이득과 안전을 위해 동류의 인간들과 함께 지켜야 할 최상의 행동 규칙들을 따르게 했다.
- 안락에 대한 애착이 인간 행동의 유일한 동기임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인간은 공동의 이익 때문에 동류 인간들의 도움을 기대해야 하는 드문 경우와, 경쟁 때문에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훨씬 더 드문 경우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 인간들은 그렇게 서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킴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에 관한 어떤 대략적인 관념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이를 요구하는 한에서만 그랬다.
- 각 지방에 따라 발음이 명확하며 합의에 근거한 몇몇 음이 그 보편적인 언어에 더해짐으로써 그 지방 고유의, 하지만 조잡하고 불완전한 언어를 갖게 되었다.
- 초창기의 진보는 마침내 인간에게 더 빠른 진보를 가능케 했다. 정신이 트이면 트일수록 솜씨는 더 늘어났다. 점토와 진흙. 가족이 형성되고 구별이 생겨나고 일종의 소유가 도입된 최초의 혁명기였다.
- 인간의 마음의 최초 발달은 공동의 거처에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이들이 모여 살게 된 새로운 상황의 결과였다. 더욱더 결손된 작은 사회가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여성은 집 안, 남성은 가족의 양식을 구하러 밖으로. 공동으로 맞서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일은 더 쉬워졌다.
- 군거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러한 삶이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도구를 발명한 인간들. 불행의 단초. 편리함은 습관. 편리함을 잃으면 불행해지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소유한들 행복하지도 않았다.
- 섬에서 서로 가까이 함께 생활해야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더 어떤 공유의 방언이 형성되었다. 최초의 항해의 시도. 사회와 언어는 섬에서 발생하여 완성된 뒤 대륙에 알려졌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 일정한 장소를 잡게 됨으로써 무리를 이루게 되고, 동일한 생활 방식과 식량과 기후의 공통적인 영향으로 생겨난 풍속과 특성들에 의해 결합된 고유한 국가를 이루게 된다.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게 되면 어떤 관계를 낳게 된다. 다른 대상들을 바라보고 비교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 관계는 확대되고 긴밀해졌다. 저마다 타인들을 바라보고 타인들도 자기를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타인들로부터 받는 호의적인 평가와 존경은 가치를 갖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 불평등과 동시에 악덕으로 향한 첫걸음이었다. 수치심과 선망이 유래.
- 저마다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우 누구도 어 이상 무사할 수 없었다. 예의범절의 의무. 누구나 자신이 받은 멸시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응징하기 때문에 복수는 끔찍해지며, 따라서 사람들은 냉혹하고 잔인해진다. 인간은 본래 잔인하기에 유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질서유지 기구가 필요하다고 서둘러 결론 내리는 것은 관념들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하고 그 민족들이 이미 얼마나 최초의 자연 상태로부터 멀어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크에 따르면, "소유가 없는 곳에는 부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법이 생겨나기 전에는 각자가 자신이 받은 모욕에 대한 유일한 재판관이자 복수자였기에 복수에 대한 공포가 법의 제재를 대신했다.
- 혼자할 수 있는 일과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는 기술에만 전념하는 한 인간들은 그들의 본성이 허용할 수 있는 데까지 자유롭고 건전하게 선량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독립적인 교류에서 오는 즐거움을 변함없이 누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두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 혼자서 두 사람분의 양식을 가지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며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 야금술과 농업의 발명이 그와 같은 큰 변화를 야기한 두 가지 기술이었다. 대륙에 철과 밀이 동시에 가장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철의 발견은 어떤 화산의 특별한 상황일 가능성.
- 인류가 농업기술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기술들의 발명이 필요했음이 틀림없다. 노동자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공동의 식량을 공급해 주는 데 사용되는 일손은 줄어들었지만 식량을 소비하는 입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식량의 증산을 위해 철을 사용하는 비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밭갈이와 농업기술. 철을 가공하고 그 용도를 늘리는 기술.
- 토지의 경작으로부터 필연적으로 토지 분배가 뒤따랐다. 그리고 소유가 일단 인정되자 정의에 관한 최초의 규칙이 뒤따랐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자기의 것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각자가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갓 생겨난 소유의 관념이 육체노동 이외의 것으로부터 유래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만큼 더욱더 자연스럽다.
- 만일 사람들의 재능이 동등했다면 변함없이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많이 버는 반면 다른 한쪽은 살기가 힘들었다. 인간들 사이의 차이는 그 결과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지속적이 된다.
- 그 자질들은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기에 곧 그 자질들은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었기에 곧 그 자질들을 갖거나 아니면 가진 척할 필요가 있었다. 위엄 있는 호사와 기만하는 술책과 그에 따르는 모든 악덕이 생겨났다. 마침내 탐욕스러운 야심과, 진정한 욕구에서보다는 남도다 우위에 서기 위해 타인과 비교하며 재산을 늘리려는 열의는 모두에게 서로에게 해를 끼치려는 악한 성향과 은밀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경쟁과 적대가, 다른 한편으로는 이익의 대립, 그리고 타인의 희생 위에서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는 음흉한 욕망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 모든 해악은 소유가 낳은 첫 번째 결과이며 막 생겨나는 불평등의 불가분의 동반자다.
- 부를 나타내는 표시들이 발명되기 전에는 그 부를 이루는 것으로는 땅과 가축밖에 없었으며, 실제 재산이었다. 모든 소유지가 서로 인접할 정도로 수나 넓이 면에서 증가했을 때 소유지는 오로지 타인의 소유지는 오로지 타인의 소유지를 희생시킴으로써만 불어날 수 있었다. 나약함은 가난하게 되거나 부자에게서 먹을 것을 얻거나 약탈하게 되었다. 지배와 예속, 폭력과 약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자는 지배하는 즐거움을 맛보자 이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었으며, 또 다른 노예들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기존 노예들을 이용함을써 그들은 자기들의 이웃을 지배하고 노예로 만들 생각밖에 하지 않게 되었다.
- 인간을 탐욕스럽고 야심에 차고 약하게 만들었다. 가장 강한 자의 권리와 최초의 점유자의 권리 사이에 빈번한 갈등이 발생하여 싸움이나 살인에 의해서만 끝이 났다.
-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힘까지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여 적들을 자신의 방어자로 만들고, 그 적들에게 다른 준칙을 주입하여 자연법이 자신에게 불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제도들을 그들에게 부여하는 것이었다.
- 서로에게 대항하게 하여 가난할 때나 부자일 때나 아무도 자신의 안전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설명해 준 뒤 그는 자기 목적을 위해 그의 이웃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그럴싸한 이유들을 쉽게 생각해 냈다. "우리의 힘을, 우리 자신에게 불리하게 하는 대신 사려 깊은 법에 따라 우리를 다스리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보호하고 방어해 주며 공동의 적을 물리쳐 주고 영원한 화목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해주는 최초의 권력에 집중시킵시다."
- 이 사회와 법은 약자에게는 새로운 구속을, 부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하여 자연적 자유를 아주 파괴해 버리고 소유와 불평등의 법칙을 영구히 고착화시켰으며, 교활한 횡령을 확정적 권리로 만들어 몇몇 야심가를 위해 인류 전체를 노동과 굴레와 비참에 예속시켰다.
- 자연 상태로 여전히 남아 있는 정치체들도 곧 개인들에게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강요한 바로 그 불편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쟁. 가장 정직한 사람들조차 동류 인간들을 목 베어 죽이는 것을 그들의 의무 중 하나라고 가르쳤다. 학살.
- 1. 정복의 권리는 권리가 아니어서 어떠한 다른 권리의 근거가 될 수 없었다. 여전히 전쟁상태로 남아 있기에 국민이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 정복자를 그들의 우두머리로 택하지 않는다. 가장 강한 자의 법 이외의 다른 법도 있을 수 없다.
2. 강한 자와 약한 자라는 어휘가 애매하다. 최초 소유권의 확립과 정치적 지배의 확립 사이에 존재하는 기간에는 그 어휘보다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라는 어휘가 더 적절하다.
3. 가난한 자들은 유일한 재산인 그 자유를 아무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넘겨주는 것은 그들로서는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었다. 부자들은 재산 하나하나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어떤 일은 그것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에 의해서보다는 이득을 보는 사람들에 의해 발명되었다.
- 갓 태어난 정부는 지속적인 일정한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철학과 경험의 부족은 눈앞에 보이는 단점들만 알아보게 했다. 부지를 청소하고 모든 낡은 자재를 치우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는 대신 끊임없이 뜯어 고치기만 했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했으며, 불편과 무질서가 계속해서 증가했다. 몇몇 개인에게 공권력이라는 위험한 기탁물을 맡길 것을 생각하고는 통치자들에게 국민의 심의 의결 사항들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게 하는 일을 맡겼다.
- 재산과 자유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악의 경우는 그가 타인의 처분에 달려 있는 것이기에, 통치자의 도움을 빌려 지키려 했던 것들을 되레 그 통치자의 수중에 넘겨주는 것은 양식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국민들이 통치자를 갖는 것은 그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모든 참정권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가 왕을 갖는 것은 왕이 우리로 하여금 주인을 갖는 것을 막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 정치인들은, 참을성 있게 노예 상태를 견뎌내는 것을 보고는, 인간에게는 예속에 대한 타고난 성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스스로 가질 때에만 그 가치를 느끼며 잃어버리는 즉시 그에 대한 취향도 사라지는 순수와 미덕처럼, 자유도 그와 같다.
- 길들여지지 않은 말은 제갈만 가까이 가져가도 갈기를 곤두세우고 땅바닥을 발로 걷어차며 명렬하게 발버둥 치는 반면 길들여진 말은 채찍과 박차를 참을성 있게 견디는 것처럼. "비참한 예속 상태를 평화라고 부른다는 것"
- 명령하는 자의 유용성보다는 복종하는 자의 이익에 더 신경을 쓰는 권력의 부드러움만큼 전제군주제의 잔인한 정신과 거리가 먼 것은 없다. 그는 그들의 재산을 빼앗으면서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되며,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 은총을 베푸는 것이 된다.
- 전제정치의 자발적인 확립이라는 주장에는 진실성이나 견고함이 발견되지 못할 것이다.
- 사람들이 약속과 계약에 의해 타인에게 자신의 재산을 양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푸펜도르프는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추론인 것 같다. 나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는 것은 내게 중요하며, 나는 범죄의 도구가 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가를 받더라도 그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자연과 이성을 동시에 거스르는 일일 것이다. 노예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자연을 곡해할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그 권리를 영속화하기 위해 자연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노예의 아이는 노예로 태어난다고 엄숙한 투로 말하는 법률가들은, 달리 표현해 보자면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결말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다.
- 정치체를 선택하는 국민과 통치자들 사이의 진정한 계약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국민은 그들 모두의 의지를 하나의 의지로 결합시켰기에 그 의지가 표명되는 모든 조항은 각각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게 예외 없이 의무를 부가하는 기본 법률이 된다. 그리고 그 법률 중의 하나는 다른 법의 집행을 감시하는 책임을 진 행정관들의 선출과 권한을 규정한다. 이 권한은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까지 미치지만 그 체제를 바꾸기까지는 못한다. 그 권한에는 법과 법의 집행자들을 존경하게 만드는 명예이고, 노고에 대해 보상해 주는 특권이다. 위탁자들의 의향에 따라서만 사용해야하고, 평화롭게 향유해야하며,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 이 정치체제의 유지를 감시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이해당사자들이다.
- 정치체의 행정관들은 자신들의 소송에서 유일한 판결자이다. 조건이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자마자 계약을 언제나 포기할 권리를 가질 것이다. 국민도 통치받기를 포기할 권리가 당연히 있다.
- 인간의 정부가 단순한 이성보다 더 견고한 바탕을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 주권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유해한 권리를 백성에게서 빼앗는 신성불가침의 성격을 그 주권에 부여하기 위해 신의 의지가 개입하는 것이 공공의 안녕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 정부의 여러 형태는 그것이 확립될 당시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차이에서 기원한다. 군주제, 귀족제, 민주정치. 시민들은 자유를 지키기를 원하는 반면, 신민들은 이웃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생각만 했다.
- 불평등의 진전을 추적 : 법과 소유권의 확립(부자와 가난한 자) >> 행정관직의 제도(강자와 약자) >> 합법적인 권력의 전제 권력으로의 변화(주인과 노예)
- 이미 자신의 쇠사슬을 끊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인민은 그들의 평안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예속 상태를 증대시키는 일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대물림이 된 지배자들은 그들의 행정관직을 가문의 재산으로 여겼으며, 처음에는 관리에 지나지 않았던 그들이 스스로를 국가의 소유자로 생각했다. 그들은 같은 나라 사람들을 자신들의 노예라고 불렀다.
- 사회제도를 필요하게 만드는 악덕은 그 제도의 남용을 불가피하게 만든 악덕과 동일한 것. 모든 정부는 필요하지도 않은데 세워졌을 것. 아무도 법망을 피하지도 않으며 행정관직을 남용하지도 않는 나라는 행정관도 법도 필요하지 않을 것.
- 정치 차별은 필연적으로 시민 차별을 야기한다. 자유롭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을 예속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은 야심적인 인간들이나 비열한 인간들 사이에서는 쉽사리 확산된다. 인민이 그 정도로까지 눈이 멀자, 지배자들은 인간들 중 가장 하찮은 자에게 이렇게 말 하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왔었음에 틀림없다. "위대하구나, 그대와 그대의 모든 가문은" 그러면 즉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위대하게 보였다. 그의 후손들은 지위가 더욱더 높아졌다.
- 차별들의 종류 : 부, 귀족 신분, 지위, 권력, 개인적인 장점. 사회에서는 그것들에 의해 평가된다. 개인적인 장점이 나머지 것들의 기원이기에 부가 다른 불평등들이 귀착되는 최후의 불평등임을 보여준다.
- 부는 안락에 가장 직접적으로 유용하고 가장 쉽게 전할 수 있다. 평판과 명예와 특혜는 모두를 경쟁적이고 경합적으로 만들어(적으로 만들어) 각자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한 투기장 안에서 대결하게 함으로써 매일 얼마나 많은 각종 실패와 성공과 대재앙을 야기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 다수가 비천함과 가난 속에서 살 때 소수의 권력자와 부자가 권세와 부의 절정을 누리는 것은, 후자의 인간들이 자신이 누리는 것을 전자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며, 상황을 바꾸지 않고서는 그들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 지배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을 갈라놓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겉으로는 사회에 화합의 분위기를 준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분열의 씨를 뿌릴 수 있으며, 신분들 사이에 권리와 이익을 서로 대립시켜 상호 불신과 증오심을 야기하여 결과적으로 그들 모두를 억압하는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조장하는 것을 볼 것이다.
- 인민은 더 이상 지도자나 법이 아닌 전제군주만을 가질 것이다. 전제군주제가 행해지는 곳이면 어디서든 전제군주 외에 어떠한 다른 지배자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예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미덕은 가장 맹목적인 복종뿐이다.
- 불평등의 최후 지점에선 모든 개인이 이제 아무것도 아니기에 다시 평등해진다. 선에 대한 관념이나 정의에 대한 원리는 다시 사라져버린다. 모든 것이 오로지 최강자의 법. 폭력에 항의할 권리가 없다.
- 미개인과 문명인은 마음과 성향이 근본적으로 너무 달라서, 전자에게는 지극한 행복이 후자에게는 절망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노예상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는 그 노예 상태를 함께 나눌 영광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하듯이 말한다. 미개인은 자기 자신 안에서 사는 데 반해 언제나 자기 밖에서 살아가는 사회인은 타인의 평판 속에서만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의 본원적 상태가 아니며, 그처럼 우리의 모든 자연적 성향을 변화시키고 변질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의 정신과 사회가 야기하는 불평등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 불평등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없으나 우리의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발전으로부터 그 에너지를 얻어 성장하며, 마침내는 소유권과 법의 제정에 의해 항구적이 되고 합법화된다. 실정법에 의해서만 허용된 도덕적 불평등은 그것이 신체적인 불평등과 정확히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마다 항상 자연법에 위배된다는 결론. 바보가 총명한 사람을 통솔하는 것, 굶주린 다수에게는 필요한 것이 모자라는 데 소수의 사람에게는 사치품이 넘쳐나는 것은, 명백히 자연법에 위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