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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3일 목요일

좌파의 확신이란 동물적 정복욕의 다른이름이 아닐까?


당신은 '광개토대왕'이 자랑스러운가?
혹은 '징기스칸'이 우러러보이는가?

만화 '창천항로'에 보면, 유비를 회유하며 꾸짓는 장면이 나온다.
적장이 유비에게 조조군에 투항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자 유비는 조조군이 일으킨 전쟁을 막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병한 것이라며 투항을 거부한다. 그러자, 적장은 조조군이 하루 빨리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전쟁을 가장 빨리 없애는 방법 아니겠냐며, 당신같은 이가 있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히틀러도 그랬고, 박정희나 전두환도 그랬다.
국가의 혼란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서 단일한 조직으로 국가를 재편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독재라고 부른다. 독재가 된다면 정쟁 갈등은 사라진다. 단일한 조직이 되었으니 하나의 질서를 관리만 한다면 사분오열된 국가보다 안정적이다. '이퀄리브리엄'과 같은 영화에서 그리는 단일한 국가의 모습은 빅브라더 하에 심지어 지루할 만큼 평안하다. 독재는 정쟁과 갈등을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다면, 왜 인간에게 전쟁이나 대립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정벌 군주나 독재자가 반복해서 등장해야 했을까?
인간은 통제될 수 없는 존재이며, 통제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소수파와 다수파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즉, 정국을 '평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복욕> 그것의 발로에 불과할 뿐.

결국, 인간에게 있어 평화는 공존이 존재할 때뿐이다.
춘추전국시대 소진과 장의가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그 공존의 질서로 평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와 동시에 그것이 깨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나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상대편과 다른 이유인 것처럼 '신념'을 주장하지만, 결국 그 심연에는 상대편과 다를 바 없는 '정복욕'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확신을 의심할 수 있는 겸손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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