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은 그렇게 말했다.
"소피스트란 궤변론자가 아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위시하여 수많은 폴리스로 에게해 연안이 시끌했던 당시가 소피스트들이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다.
철학의 영어말인 'Philosophy'는 사랑을 의미하는 'phil'과 앎을 의미하는 'sophia'로 이루어져있다.
소피스트는 바로 이 'sophia'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소피스트의 거두로 프로타고라스가 있는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판단하는 존재이고, 그 감각은 개별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양손을 각각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에 담고 있다가 동시에 미지근한 물에 동시에 담그면 오른손과 왼손이 느끼는 물의 온도가 각각 다르다.
심지어 한 몸에서 느끼는 감각마저 각기 다르게 느끼는 데, 인간이야 오죽하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회 속에서 개별 인간이 성장해 온 환경은 다르므로 모든 사물에 대한 감각은 각기 다르다.
이러한 감각주의는 결국 상대주의 그리고 회의주의로 이어진다.
그러한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는 진지한 성찰은 멀리하게 만들고 오로지 패권에 의한 진리의 왕좌에 오르기를 욕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극소수의 그리스 '시민'들은 전사로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기에, 노예를 대하듯 완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시민'들의 정치악다구니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그에겐 현란한 말빨이 필요했다.
특히나 '도편추방법'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의 민주주의란 것이 군인으로 이루어진 민주시장에서 파시즘이라는 질서에 불복하는 낙오자를 색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현란한 웅변술은 생존게임의 필수 스킬이었다.
그러한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던 이들이 소피스트였다.
앎을 팔아먹으며 살았던 민중 선동가.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런 난장판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소피스트에게 현혹당한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문답법을 시도했다.
화두를 던져두고 계속 물음을 이어가며 결국엔 그 자신이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너 자신을 알라."
산파술이었다.
그는 패권을 잡기 위한 선동가들과 그들의 파시즘적 민주주의를 깨기위해 부단히 쫒아다니다가 결국 민주주의에 의해 죽음이라는 사상의 자유 박탈과 언론의 탄압을 당한다.
사약을 받았을 때 그는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크리톤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 하는 여론의 비난이라는 것은 여론이 아닙니다. 간수에게 찔러줄 몇 푼이 아까워 날 죽였다고 말하는 그런 여론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선동으로 좌로 우로 몰려다니는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까발기려 했다.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위협을 느낀 그리스 민주정치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내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악법이든 민주정치이든 뭐든 자신이 그것을 지켜주지 않는 다면, 그런 자신이 스스로 비판했던 소피스트들과 다를 바 없다며 독배를 마셨다.
그리스의 민주정치란 파쇼정치와 다를 바없었다.
도편추방법이란 것이 한국전쟁 때 남발되었던 인민재판과 무엇이 다를까?
그런 그리스의 현실을 보며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고뇌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그는 철인정치(rule of philosophers)를 구상해 낸다.
모든 사유를 철폐하고, 심지어 가족의 구성까지 해체해버리고, 그 개인의 능력에 따라 통치계급 무사계급 상인계급으로 나누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까지 했다.
허울뿐인 그리스 민주정치에 비한다면 플라톤의 국가론은 대단히 파쇼적이다.
하지만 그리스 민주정치가 결국 군사정치의 도구였던 것처럼 현실에 비추어 플라톤의 국가론을 되집어 본다면 충분히 상상 가능했던 것이란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파르타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심지어 갓태어난 아이를 전사로 키울 수 있을 지 여부에 따라 죽이고 살리는, 그리스의 파쇼정치 속에서 플라톤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파쇼 민주정치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때문에 플라톤은 유토피아를 꿈꾸게 된 것이다.
이 긴긴 이야기의 발단은 인간의 감각이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각기 다른 다양한 감각을 대화를 통해 공통의 진리를 통해 탐구할 것이느냐, 아니면 대화의 여부는 일절 남겨놓지 않은 체 오로지 집단의 논리에 복속할 것을 요구할 것인지에 따라 감각의 위치는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와 같이 감각을 상대주의로 돌린다면 그것은 관념론으로 빠질것이다.
'내가 느끼고 그것에 내게 완벽한 진리를 부여했는 데 내가 그와 대화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곧 진리니라.'
이런 방식의 사고는 감각을 말초적 신경에 그치게 해서 2차적 사고를 하지 않는 게으른 사고 방식이다.
그런 반성하지 않는 독단적인 사고 방식이 관념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내가 느끼지만 그는 나와 다르게 느낄 것이다. 따라서 그와 대화를 해보아야 겠다. 그래서 무엇이 답인지, 내가 느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지 찾아봐야 겠다.'
이와 같은 방식이 감각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사상의 다양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점은, 전자의 상대주의는 회의주의로 이어져서 대화를 귀찮아해서 쉽게 투표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그 투표전에서 승리하려면 많은 표를 가져와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현란한 웅변술을 필요로 하게 한다.
즉, 실천없는 거짓말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한국정치의 현실이 고대 그리스의 군사민주정치와 무엇이 다를까.
하지만 후자에게는 투표의 표 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화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문제의 인식과 해결이 중요한 것인지, 집단의 논리와 그 속에서의 패권이 중요한 것인지는 되세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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