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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9일 목요일

사상범에 대한 연민


사상범이란 어떤 존재로 취급해야할까.

요즘 신영복 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수필을 읽고 있다.
장교로 임관하여 육사에서 경제학 교수로서 생도를 가르쳤던 그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의 길고 긴 징역살이를 시작한다. 결국 20여년이 지난 후 출소해서 다시 사회의 품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후 사면 복권되었지만, 평상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이미 송두리채 빼앗긴 이후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다소의 명성, 교수 직위, 그리고 자유. 그는 행복할까.

그의 글을 통해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든 생각은 '사상범에겐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 것일까'하는 것이었다. 보통 범죄자라고 란다면, 살인 폭행 절도 사기 유괴 등등 '저질러진' 그리고 '실체적인' 피해를 입힌 자들이다. 그래서 그 피해에 대한 응당의 대가를 치루게 함은 물론 또다른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본보기로서 벌을 주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사상범은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다는 것일까. 실제로 그가 다른 사회를 꿈꾸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강구할 구상을 했다고 치자.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난 피해가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실제로 그가 수단을 강구해서 행동에 옮겼다고 치자. 하지만 우리는 보통 그걸 테러범이라고 부르지 않나. 살상하는 테러를 벌이지 않은 이상  그는 테러범이 아닌 사상범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면 모두 잠재적인 테러범으로 여겨져 구치소에서 삶을 정리해야하는 것일까. 국가의 사상과 다른 방향의 이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죄를 지우고 벌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가 재판이라는 시끌한 절차를 거쳤을 뿐이지, 감방에 들어 앉아있던 건 사실은 멀쩡한 사고를 가진 그리고 실제로 저지른 잘못이 없는 무고한 시민이었을 뿐이었으며,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억새게도 운이 없는 청년이었다. 국가는 한 사람의 삶을 너무도 쉽게 파괴해 버렸다. 단지 국가의 강요된 사상과 다른 이상을 가졌다는 혐의 만으로. 실제 그가 저지른 '범죄'라는 것의 실체의 존재여부도 불명확한 것 아니었던가. 얼마나 억울했을까.

억만금을 주고도 돌려받을 수 없는 고귀한 삶을 빼앗겨버린 그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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