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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9일 목요일

민주시민을 선동하라!!


<절반의 인민주권>의 저자 샤츠슈나이더는 '인민이 너무 무식해서 여론조사원이 묻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실패작'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인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만들어졌지, 민주주의를 위해 인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제체이다"

타당하다. 민주주의를 운영해나가는 실체는 관료나 정치인이 아니라 무지렁이 인민들이며, 그래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게 디자인 되어야 타당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샤츠슈나이더의 주장에 100%동의하지는 못하겠다. 왜냐하면 당위로는 타당할테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고 실제로 그러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반론1. 인민에게는 계몽이 필요하다.
여기서 계몽이라 함은, 인민을 목하에 두고 무지한 그들에게 권위주의적으로 가르침을 내려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인민이라는 추상적인 객체로 부르기 이전에 그들 하나하나는 나름의 가치관을 가진 우주이다. 다만,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으므로, 나의 체계를 그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 전제들에 대한 무지를 계몽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이는 상하관계가 아니 수평관계에서 나의 세계를 그에게 가르쳐 이끄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자를 우경화시기키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가르쳐야하는 것이다. 또한 후불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독재 치하의 체제가 아닌 당신들 각자에게 주권이 있고 행사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즉, 다른 질서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민에게는 계몽이 필요하다.

반론2. 민주주의는 그리스 철학을 탄생시킨, 두뇌계층 만든 권력구조이다.
즉, 샤츠슈나이더의 주장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되었던 것이 아니라, 노예들을 부리고 나서 할일이 없어 형이상학에 빠져있던 그리스 시민들이 만든 체제라는 것이다. 당시로는 최상위 두뇌계층이 만든 시스템이다. 근대 민주주의로 오더라도, 봉건왕정이 무너지고 부르주아 혁명 뒤에 만들어진 간접 민주주의는 일정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엘리트 계층인 부르주아지, 혹은 폭이 좀 더 넓었던 경우는 활자를 읽을 수 있었던 백인 남성이 주체로 설계되었다. 즉, 일정한 수준의 교육이 필요했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반론3. 브나로드운동은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계급의식의 각성을 위해 인민을 계몽시키려는 운동이었던 브나로드 운동은 곧 주권의식을 심어주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즉, 계급의식이란 사회 내에서 자신이 위치한 권력구조상 위치를 각성시키는 것이고, 프롤레타리아라고 하더라도 사회구성원으로서 그 국가나 공동체의 운영에 직접 지배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민주주의 도입을 위해 각 시민들에게 주권이 있고, 그 주권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작동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유사하다. 즉, 주권의식의 각성에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사회화는 곧 생물적 욕구의 통제화 과정이다. 따라서 자연인을 그대로 사회 속에 둔다고 해서 자신의 의욕하는 바를 당연하듯이 주권을 통해 사회에 반영시킬 것이라는 가정은 어불성설이다.

위 반론들을 근거로 할 때, 샤츠슈나이더의 바램과 달리 인민은 '민주주의'에 대해 선천적으로는 무지하나 교육을 통해 그 체제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교육되지 않았거나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시민이 존재하는 민주사회는 중우정치로 빠져들 것이다. 히틀러를 탄생시킨 것은 민주주의 제도였으며, 박정희의 권력도 민주주의 제도가 떠받쳤던 것이다. 계몽되지 않은 민주시민은 실패작이다.
다만, 문제는 무엇을 내용으로 계몽을 시킬 것이며, 어떤 수준으로 계몽시킬 것인가이다. 가장 좋은 것은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민주시민의 계몽에는 경험이 필요하다.

민주시민을 선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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