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물자의 생산량 뿐만 아니라 유통량을 증가시켜야 한다. 생산력과 소비의 증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이나 새로운 상품의 개발이 필연적이다. 그런 것이 가능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그 규모의 경제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곧 독과점의 등장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집중된 자본에 의한 도전적인 투자와 개발. 필요하다.
그런데 그 집중된 자본은 누가 통제할 것인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고전파조차도 독과점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그것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즉, 시장이 만들어낸 괴물이 시장을 통채로 집어삼키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딜레마...
그 동안 보수라고 불렸던 정권이든 진보라고 불렸던 정권이든, 혹은 자신을 보수라고 평가하는 유권자이든 진보라고 평가하는 유권자이든 경제시스템이야기를 꺼내면 봉착하는 장애물이 있다. 시장의 통제 방법.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경제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국가인데도, 경제를 대단히 신성시 한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독재가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교수나 관료, 정치가가 이야기하면 의문을 제기하지 못 한다.
국가는 대기업 중심을 경제성장전략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파이 키우기, 낙수효과를 이야기하고, 기업의 비리나 탈루 탈세 같은 비윤리에 대해서는 섣불리 비판하지 못하게 적당한 수준에서 방어벽을 쳐준다.
그리고 유권자는 당연히 삼성이나 현대, LG가 무너지면 국가가 망하는 줄 안다. 그래서 아무도 이 망해가는 경제 시스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당신들의 삶이 망가져 가는 것이 이것 때문이라는 것은 생활 속에서 느끼면서도, 그것이 경제시스템 때문이라고 이야기해도 삼성이 우리를 먹여살려줄 것이라 읍소한다. 그래서 김영삼을 찍었고, 김대중을 찍었고, 노무현을 찍었고, 이명박을 찍었다. 그래 놓고 투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다며 정치에 무관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자위한다.
정치는 국가라는 공공재를 어떻게 갈라먹을지 결정하는 방법이다. 결국 '경제가 문제'이다. 생산력 증대고 유통량의 향상이고 등등 공자왈 맹자왈은 결국 우리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 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재벌의 돈빨에 쫄지말아야 한다. 재벌로 지탱되는 경제시스템은 결국 재벌에게 종속된다. 선한 독재자를 선망하는 것만큼 나이브한 것이 없는 것처럼, 선한 부자를 선망하는 것 역시 나이브한 스탠스에 불과하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현실에는 없으며, 김일성은 독재자에 불과하다. 삼성같은 재벌 역시 하나의 장사꾼이지, 그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제 시스템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한 시스템은 없으며, 때론 고장날 수도 있다. 집에 수도관이 막히면 건물주인한테 시끄럽게 따지는 것처럼, 국가 경제가 말아먹고 있으면 시끄럽게 떠들어야 한다. 이 놈의 경제 뒤집어 버리겠다고.
시끄럽게 떠들어야 한다. 불평이고 불만이고 삼삼오오 모여서 전부 토해내야 한다. 바꾸고 싶은 것은 바꾸자고 주장해야 한다.
경제 시스템을 바꾸자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없는 한
가난한 자는 더욱더 가난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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